네가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단다. 초코렛을 주면 좋아라고 내 팔 붙잡고 깡총깡총 뛰던 모습이 엇그제 같은데 시집 간다니 참 세월은 빠르구나.

淑이야.
"아무개가 결혼을 한단다"라는 말이 나오면 또래의 친구들이나 주변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란다.
그래서 선망하고 축복하고 호기심에 차서 여러 질문들을 던져온다. 그 질문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가장 강렬하게 궁금히 여기는 것은 "신랑이 무엇하는 사람인가?"하는 것이다.
무엇하는 사람인가, 직업은 무엇인가라는 말은 바로 월수입이 얼마인가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그를 뒷받침할 만한 직장이나 부모나 학벌이나 권력이나 재력이 따르면 그 결혼은 잘하는 결혼이라 입방아를 찧는단다. 어떤 처녀들은 결혼하여 행운을 차지하고 횡재하듯 팔자를 고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들 들었다.

그러나 淑아! 결혼은 요행이 아니란다. 내가 같이 참여하여야 할 농지(農地)이며 개쳑해야 할 황무지(荒蕪地)로 여겨야 한다.
진홍주단을 깔아 놓은 평탄대로로 백공작처럼 입장하여 아무런 노력도 없이 내인생의 공허를 보상받으려는 것은 삶의 주관자도 능동자도 될 수 없다. 편하게는 살지언정 보람있게는 살지 못할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것이 결혼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이룩하기 위해서"가 결혼의 동기가 되어야 된다.

결혼은 사랑이 변신한 무덤도 아니며 기화요초(琪花瑤草)가 찬란한 낙원도 아니다.
신부의 자리는 자기의 인생을 그 앞에 내놓고 함께 지키기 위해 어렵게 획득한 자리여야 한다는 것을 명심할 수 있겠니?

淑이야! 사랑과 신념과 상실, 이것이 가장 큰 "결혼의 지침금"이란다. 결혼, 그날부터 나를 보충하고 다듬으며, 나를 길러내고 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를 수용하고 함께 완전해지기를 원하며 새로운 세계를 탄생기키는 것이라 생각해야 한다. 결혼은 안이하고 평온하고 즐겁고 황홀한 것만은 아니다. 또 사랑한다고 부르짖으면서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겪는 아픔과 눈물을 모른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구나. 사랑에는 긴 묵념과 기도와 인내와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지 않니?

귀여운 내 친구 딸 淑이야!
그날 나는 여러 사람의 축복 속에 행복의 동굴로 들어가는 네모습을 지켜보련다.
결혼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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